Web3 계정 추상화와 생체인증이 여는 지갑 없는 미래

Web3의 ‘비밀번호 없는 미래’: 계정 추상화와 생체인증이 만드는 혁신

1. 서론: ‘지갑’ 없는 Web3, 상상이 현실이 되다

Web3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복잡한 사용자 경험(UX)’을 꼽습니다. 12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시드 문구(Seed Phrase)를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부담감, 모든 거래마다 팝업창을 띄워 서명을 요구하는 지갑, 그리고 알 수 없는 가스비(Gas Fee) 개념까지. 마치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매번 IP 주소를 직접 입력해야 했던 초창기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만약 Web3 서비스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앱처럼, 지문이나 얼굴 인식 한 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어떨까요? 비밀번호나 지갑 없이도 안전하게 자산을 관리하고, 디앱(dApp)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세상. 공상 과학 소설 같던 이 이야기가 계정 추상화(Account Abstraction, ERC-4337)WebAuthn(생체인증) 기술의 만남으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두 기술이 어떻게 결합하여 ‘월렛리스(Walletless)’ 경험을 구현하고, Web3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는지 실용적인 관점에서 깊이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2. 핵심 개념 짚어보기: 계정 추상화와 WebAuthn

월렛리스 UX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기반이 되는 두 가지 핵심 기술, 계정 추상화와 WebAuthn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각각의 기술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가능성을 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1. 계정 추상화(ERC-4337): 내 계정을 스마트하게

이더리움에는 두 종류의 계정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외부 소유 계정(Externally Owned Account, EOA)’이고, 다른 하나는 코드에 의해 작동하는 ‘컨트랙트 계정(Contract Account, CA)’입니다. EOA는 개인키(Private Key)에 의해 제어되며, 이 키를 잃어버리면 모든 자산을 잃게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CA는 다양한 규칙(코드)을 내장할 수 있지만, 스스로 트랜잭션을 시작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계정 추상화(ERC-4337)는 이 두 계정의 장점을 결합한 개념입니다. 사용자의 계정 자체를 EOA가 아닌, 프로그래밍 가능한 ‘스마트 컨트랙트 지갑’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마법 같은 기능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 가스비 대납(Gas Sponsorship): 서비스 제공자가 사용자의 가스비를 대신 내줄 수 있습니다.
  • 다양한 인증 방식: 개인키뿐만 아니라, 생체인증, 다중 서명(Multi-sig) 등 원하는 방식으로 계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 계정 복구: 키를 분실해도 미리 지정해 둔 ‘수호자(Guardians)’를 통해 계정을 복구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단순한 열쇠(개인키)로만 열 수 있던 현관문에, 비밀번호, 지문 인식, 안면 인식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스마트 도어락을 설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구분 기존 계정 (EOA) 스마트 계정 (ERC-4337)
제어 방식 단일 개인키 (분실 시 복구 불가) 프로그래밍 가능 (다중 서명, 생체인증 등)
계정 복구 시드 문구에만 의존 (위험성 높음) 사회적 복구, 다중 백업 등 가능
가스비 사용자 직접 부담 (ETH 필요) 서비스 제공자가 대납 가능 (Paymaster)
트랜잭션 단일 작업만 처리 여러 작업을 하나로 묶어 처리 가능 (Batching)

2.2. WebAuthn: 비밀번호를 대체하는 생체인증

WebAuthn은 W3C(World Wide Web Consortium)와 FIDO Alliance가 제정한 웹 표준으로, 비밀번호 없이 사용자를 인증하는 기술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에서 지문이나 얼굴로 잠금을 해제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를 웹에 적용한 것입니다. 사용자의 기기(스마트폰, 노트북)에 내장된 보안 칩(Secure Enclave, TPM 등)에 개인키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생체 정보를 통해 이 키를 활성화하여 서버와 통신합니다.

WebAuthn의 가장 큰 장점은 강력한 보안편의성입니다. 개인키는 절대 기기 밖으로 노출되지 않으며, 서버에는 공개키만 저장됩니다. 따라서 서버가 해킹당해도 사용자의 인증 정보는 안전하며, 피싱 공격에 거의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복잡한 비밀번호를 외울 필요 없이, 익숙한 생체인증만으로 로그인이 가능해집니다.

3. 두 기술의 시너지: ‘월렛리스 UX’의 완성

계정 추상화가 ‘무엇을 할지’를 정의하는 유연한 틀이라면, WebAuthn은 ‘어떻게 인증할지’를 결정하는 안전하고 편리한 열쇠입니다. 이 둘이 만나면 Web3 사용자 경험의 패러다임이 바뀝니다.

3.1. 사용자 경험의 혁신: 로그인부터 서명까지

기존 디앱을 사용하려면 먼저 지갑을 설치하고, 시드 문구를 백업한 뒤, 디앱에 연결하고, 모든 트랜잭션마다 지갑을 열어 서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계정 추상화와 WebAuthn이 결합된 환경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단 한 번의 생체인증으로 압축됩니다.

[월렛리스 UX 시나리오]

  1. 회원가입/로그인: 사용자가 디앱에서 ‘생체인증으로 시작하기’ 버튼을 누릅니다.
  2. 인증: 스마트폰에 얼굴이나 지문을 인식시킵니다. (WebAuthn 작동)
  3. 계정 생성 및 트랜잭션: 백그라운드에서는 WebAuthn으로 생성된 키를 서명키로 사용하는 스마트 계정이 즉시 생성됩니다. 사용자가 요청한 첫 번째 작업(예: NFT 민팅)이 가스비 대납 기능과 함께 자동으로 처리됩니다.

사용자는 지갑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마치 일반 웹 서비스에 로그인하듯 자연스럽게 Web3 세계에 온보딩하게 됩니다. 이는 신규 사용자 유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3.2. 보안과 복구: 더 이상 시드 문구는 필요 없다

시드 문구는 Web3 자산 관리의 가장 큰 불안 요소였습니다. 종이에 적어두면 분실이나 화재의 위험이 있고, 디지털로 저장하면 해킹의 표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 계정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합니다.

  • 사회적 복구(Social Recovery): 사용자는 신뢰할 수 있는 가족, 친구, 또는 자신의 다른 기기들을 ‘수호자’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주 사용 기기를 분실했을 때, 이 수호자들 중 일정 수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계정의 소유권을 새로운 기기로 이전할 수 있습니다.
  • 다중 서명(Multi-sig) 백업: 높은 가치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금액 이상의 거래에는 여러 기기(예: 스마트폰 + 노트북)의 서명을 모두 요구하도록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일 기기 탈취로 인한 자산 손실을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구분 전통적 복구 (시드 문구) 스마트 계정 복구
보안성 단일 실패 지점 (Single Point of Failure) 다중 요소, 분산 신뢰 기반
편의성 보관 및 관리가 매우 불편하고 위험함 직관적이고 유연한 설정 가능
복구 과정 시드 문구 분실 시 영구적 자산 손실 미리 설정한 규칙에 따라 안전하게 복구

4. 프라이버시와 미래 전망

계정 추상화는 단순히 편의성과 보안을 넘어, 프라이버시 강화와 같은 더 넓은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4.1. ZK 기술 연동: 익명성과 프라이버시 강화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s, ZKP)은 특정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그 정보가 사실임을 증명하는 암호화 기술입니다. 스마트 계정은 ZK 기술과의 연동을 훨씬 용이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는 자신의 전체 거래 내역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특정 NFT를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하거나, 익명으로 투표에 참여하는 등의 프라이버시 강화 기능을 계정 레벨에서 구현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금융, 신원 인증 등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는 디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4.2. 2025년, 월렛리스 시대의 개막과 남은 과제

2025년은 계정 추상화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며 ‘월렛리스’가 Web3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많은 인프라 프로젝트와 디앱들이 ERC-4337을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사용자 경험의 혁신은 더 많은 대중을 Web3로 이끌 것입니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습니다. 트랜잭션을 모아 처리하는 ‘번들러(Bundler)’의 탈중앙화, 스마트 계정 운영에 따른 추가적인 가스비 문제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레이어2 솔루션의 발전과 지속적인 기술 개선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은 점차 해결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적 장벽을 허물고 사용자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5. 결론: 기술이 아닌 경험을 파는 시대로

계정 추상화와 WebAuthn의 결합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Web3 생태계의 철학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는 사용자에게 블록체인의 복잡한 내부 구조를 강요하는 대신, 그 기술을 배경으로 숨기고 직관적이고 매끄러운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시드 문구의 악몽에 시달릴 필요 없이, 지문 한 번으로 안전하게 자산을 관리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미래. 이것이 바로 Web3가 다음 10억 명의 사용자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월렛리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이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는 서비스만이 미래의 승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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